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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먹고 부럼을 까먹어 한해 운수를 막아보자.

정원대보름의 의미 - 오기일 이란

등록일 2024년02월23일 23시0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정월 대보름의 기원과 관련된 전설 중에 사금갑(射琴匣)이 있다. 원전은 《삼국유사》에 소지왕 이야기다.

신라 시대,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에 천천정으로 행차하기 위해 궁을 나섰는데 갑자기 까마귀와 쥐가 시끄럽게 울었다. 그리고는 쥐가 사람의 말로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옵소서."

그러자 임금은 신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다.

신하가 까마귀를 어느 정도 따라가다가 어느 연못에 다다랐을 때, 돼지 두 마리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신하는 돼지 싸움을 보다가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잠시 후에 연못에서 노인이 나와서 신하에게 편지 봉투를 주고는 "그 봉투 안의 글을 읽으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읽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신하는 궁에 돌아와 임금에게 편지 봉투를 주면서 연못의 노인이 한 말을 전했다.

임금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단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 편지를 읽지 않으려 했는데 옆에 있던 일관이 말하였다.

"전하, 두 사람이라 함은 보통 사람을 말하고, 한 사람이라 함은 전하를 말하는 것이니, 편지의 글을 읽으시옵소서."

일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임금은 편지를 꺼내서 읽어 보았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거문고 갑을 쏘시오(射琴匣)

임금은 곧 거문고 갑을 활로 쏜 다음 열어 보니 두 사람이 활에 맞아 숨져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왕비와 어떤 중이었는데, 중이 왕비와 한통속이 되어 임금을 해치려 했던 것이다. 

그 뒤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해서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이 찰밥이 발전해 약밥이 되었다.

까마귀뿐 아니라 쥐와 돼지도 활약을 했는데도 까마귀만 챙겨주는 것이 의아할 수 있는데, 이는 쥐와 돼지는 이미 12지신에서 한 자리씩 (심지어 첫 자리와 끝 자리) 차지하고 있는 관계로 이런 일이 아니라도 따로 쥐와 돼지를 기리는 행사가 많은데, 까마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보름날의 뜻은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면에서 보면, 그것은 달-여신-대지의 음성원리(陰性原理) 또는 풍요원리를 기본으로 하였던 것이라 하겠다.

태양이 양(陽)이며 남성으로 인격화되는 데 대해서 달은 음(陰)이며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그래서 달의 상징구조는 여성·출산력·물·식물들과 연결된다.

그리고 여신은 대지와 결합되며,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진다.

세시풍속에서 그러한 예를 들면, 우선 동제가 그렇고, 줄다리기 같은 것들도 그 전형이 된다.

동제를 지내는 시일은 약 6,000동의 서면조사 통계로는 정초가 30%, 대보름이 40%, 10월 기타가 30%로서 대보름날이 차지하는 비율이 주류를 이룬다.

그 시간도 대개 자정으로서 1년 열두 달의 첫 보름달이 충천하는 상징적인 시간이 된다.

동제신(洞祭神)도 여신이 남신의 2배를 넘는 주류를 이룬다.

이렇게 첫 보름달이 뜨는 시간에 여신에게 대지의 풍요를 비는 것이 우리 동제의 주류였고 원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줄다리기도 대부분이 대보름날 행사였다.

즉, 첫 보름달이 뜨는 밤에 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경상남도 영산의 줄다리기에서는 대낮에 그러한 짓을 하는 자는 없고 해가 져야 이루어진다고 하여, 마치 이것을 성행위처럼 여기는 것이 지방 노인들의 관념이었다.

특히, 암줄(서부, 여자편)과 수줄(동부, 남자편)의 고리를 거는 일을 그렇게 여기는데, 여기에서 암줄편인 여성편이 이겨야 대지에 풍년이 든다는 관념, 그것을 성행위로 여긴다는 관념들은 특히 민간신앙에서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대보름날의 뜻은 이와 같은 행사들의 요점에서 특히 잘 집약된다.

 

대보름의 뜻,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서 풍요의 원점이 된다.


 

 

이러한 대보름날을 설날처럼 여기는 태곳적 관습의 전승은 지금까지도 적지 않게 남아 있다. 150여 년 전의 ≪동국세시기≫에도 “이날 온 집안에 등잔불을 켜놓고 밤을 새운다.

마치 섣달그믐날 밤 수세(守歲)하는 예와 같다.”고 되어 있다. 현대의 각 지방 민속조사보고서들에도 이러한 관습들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열나흗날 저녁부터 보름날이 밝아야 운수가 좋다고 하여 집안이 환해지도록 불을 켜놓으려고 하며, 배를 가진 사람은 배에도 불을 켜놓는다.

경기도에서도 열나흗날 밤 제야(除夜)와 같이 밤을 새우는 풍속이 있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해서 잠 안자기 내기를 하는 곳이 있다.

충청북도에서도 열나흗날 밤 ‘보름새기’를 하는 곳이 여러 곳 있다.

요컨대, 대보름날의 모든 관습들은 달을 표준으로 하던 신년이라는 고대생활의 유습이 계속 강하게 전승되어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웃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상원은 중국에서도 한나라 때부터 8대축일(八大祝日)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이었다.

그러나 특히 일본에서는 대보름을 ‘소정월(小正月’)이라 부르고 있고, 지금은 양력화하고 있으면서도 이날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일부의 북유럽나라들의 민속에서는 1월 14일을 1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투리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대보름날을 신년 제1일로 삼았던 오랜 역법의 잔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세시풍속에서 달이 차지하는 비중은 태양의 비중이 문제되지 않을 만큼 강하고 큰 것이었다.

실제 농경을 위해서는 음력이 한 달씩이나 자연계절에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계절이 정확한 태양력적 요소인 24절기를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반 세시풍속에서는 여전히 달의 비중이 결정적이었고, 대보름은 바로 그 대표요 상징적인 날로 여겨져왔던 것이다.

 


 

한편, 대보름날에는 절식으로서 약밥·오곡밥, 묵은 나물과 복쌈·부럼·귀밝이술 등을 먹으며, 기풍·기복행사로서 볏가릿대[禾竿]세우기·복토(福土)훔치기·용알뜨기·다리밟기·나무시집보내기·백가반(百家飯)먹기·나무아홉짐하기·곡식안내기 등을 행한다.

또한, 이날 행하여지는 농점(農點)으로서는 달집태우기·사발재점·그림자점·달불이·집불이·소밥주기·닭울음점 등이 있다.

이날 행해지는 제의와 놀이로서는 지신밟기·별신굿·안택고사·용궁맞이·기세배(旗歲拜)·쥐불놀이·사자놀이·관원놀음·들놀음과 오광대탈놀음 등이 있다.

그리고 이날에는 고싸움·나무쇠싸움 등의 각종 편싸움이 행하여지고, 제웅치기·나무조롱달기·더위팔기·개보름쇠기·모기불놓기·방실놀이·뱀치기 등의 액막이와 구충행사(驅蟲行事)도 행하여진다.

 

출처 . 대보름 [上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동국세시기.『한국의 세시풍속』(최상수, 고려서적, 1960).『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전12책(문화재관리국, 1969∼1981). 『한국세시풍속』(임동권, 서문당, 1973)

『한국민속학개설』(이두현·장주근·이광규, 민중서관, 1974)

 

 

 

김덕순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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